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밥 돌 (문단 편집) === [[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|부통령 출마]] =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DOLE 1976.jpg|width=100%]]}}} || || '''1976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의 밥 돌과 제럴드 포드''' || 1976년 미국 대선에서 [[제럴드 포드]] 대통령은 재선은 커녕 공화당 내에서 대통령 후보 재지명은 받을지 의심이 되는 상황이었다. 대통령으로서의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말도 들었고[* 1974년 대통령 취임 후 닉슨 사면으로 인기가 추락했고, 공식 석상에서 자주 넘어지거나 엉덩방아를 찢는 등 모자란 모습을 보여서 조롱거리가 되었다.], 당내 보수파에게는 너무 중도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. 이런 배경 하에서 제럴드 포드는 당내 중도파의 지지를 받던 자신과 대비되게 젊고 보수적인 상원의원인 밥 돌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. 본래는 [[하워드 베이커]] 상원의원이 부통령 후보가 될 예정이었지만, 베이커 의원의 아내가 우울증 증세로 전기치료까지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급하게 교체되었다.[* 그 외에도 포드는 [[존 코널리]] 텍사스 주지사, [[로널드 레이건]] 캘리포니아 주지사 등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두명 모두 거절했다. 포드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던 셈이다.] 밥 돌은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전국적으로 이름이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지만, [[제럴드 포드]]가 [[로널드 레이건]]을 근소하게 경선에서 꺾고 승리하자 실망해 공화당에 등을 돌린 공화당 보수파의 표심을 다시 끌어들이는 데는 어느정도 성공했다고 평가 받는다. 실제로 공화당 전당대회 전 29%까지 떨어진 지지율이 본선에서는 48%까지 올라갔는데 여기에 밥 돌의 부통령 후보 지명이 약간의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. 하지만 일반적으로 밥 돌의 부통령 후보 지명은 포드의 자충수로 평가받는다. 첫번째로 밥 돌은 재선 상원의원으로 무명의 정치가였기에 레이건을 지지한 보수파를 끌어들이기에는 역부족이었고 1976년 대선에서도 보수파의 29% 정도가 포드가 아닌 카터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. 두번째로 부통령 토론회에서 밥 돌이 "민주당 전쟁"(Democrat War)이라는 실언을 하면서 포드의 지지율에 영향을 줬다는 주장이 있다. 1976년 대선에서는 최초로 부통령 후보 토론회가 열렸는데, 여유있게 자신의 논리를 풀어나간 프로 정치가 [[월터 먼데일]]과 달리 밥 돌은 시종일관 짜증난다는듯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해 부정적인 인상을 줬다. 밥 돌은 이 토론회에서 20세기 이후 터진 모든 전쟁[* 즉 '''2차 대전'''까지 포함해서.]이 민주당의 유약한 국방 정책으로 인해 일어났다고 민주당을 비난하며, 민주당만 없었어도 디트로이트 인구만한 미국의 인구가 목숨을 부지했을거라며 공격했는데 대다수 유권자들은 이 공격이 너무 강경한 것이라고 생각했다. 밥 돌 역시 몇 년 후 이 선거를 회고하며 "민주당 전쟁" 발언은 너무 지나친 것이었다고 자아비판하며, 자신의 그런 강경한 태도가 포드의 낙선에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며 후회의 말을 남겼다. 결국 제럴드 포드-밥 돌 조는 48%를 득표하며 50%를 득표한 카터-먼데일 조에 근소하게 패배, 돌은 다시 상원의원으로 돌아간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